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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써먹기 좋은 말들이 대개 그렇듯이)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이를테면 ‘말을 되살리면 생각이 된다’와 같은 식으로.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 이미 적혀버린 글의 입장에서 말이란 전생처럼 희미한 것이리라.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글을 쓸 때 남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사람은 거짓말을 쓴다고 하지만, 말을 할 때 타인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역 앞까지 나를 마중 나온 애인과 대략 40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날씨가 딱 좋았다.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다가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음성중심주의는 데리다가 딱 싫어하겠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데리다의 철학으로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많은 오해 속에서 첨벙거렸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이것은 오래된 불만이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모든 나 때문에 일어난 문제는 근본적으로 이것 때문에 발생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어디에도 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의 전생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은 글로 쓰고 나서야, 그나마 존재한다.

내 생각 같지 않은 말들이 너무 많이 발생한다. 말은 하나의 사건이다. 내가 꺼낸 말조차 나에게 벌어진 하나의 일이다. 나도 내가 그런 말을 왜 했는지 영원히 모른다. 그 말을 내뱉어버린 내가 버스처럼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다.

말은 수정할 수 없다. 수정테이프와 공책의 미세한 색깔 차이가 필기 노트 한 장을 찢어버리고 싶게 만든다.

말은 정말로 씨가 된다. 말은 뉴스 속보처럼 사람들 가운데 생겨난다. 어떤 말은 새싹도 나기 전에 죽어버리고, 어떤 말은 무럭무럭 자라서 하늘까지 닿는다. 씨앗은 너무 작아서 어떤 모양으로 자랄지 가늠할 수 없다. 하여튼, 어떻게든, 얼만큼이든, 자란다. 씨를 뿌릴 것이다. 방금은 또 누군가의 자위 행위에 의해 삼억 개의 씨가 방출되었다. 씨앗들은 아주 많다. 씨앗은 또 다른 씨앗으로 자란다.

그 씨앗을 묵묵히 키운다.



1.


말이 씨가 되는 문화기획학교의 첫 시간이었다. 장소는 무늬만 뮤지엄이었고, 사람들은 종이들이 가득 붙어있는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벽에 붙은 종이들은 모두 참여자들의 사전 질의응답 답변들을 인쇄해 붙여놓은 것이었다. 멋들어지게 준비된 멘트나 세련된 명함 한 장을 내미는 대신, 구글폼에서 적당히 성의 있게 대답한 것들이 나의 첫인상이 되다니! 당장이라도 떼어 버리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쓴 사람의 이름까지 붙어있지는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른다[1].

수업은 광주문화재단 국장님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쓰고 보니 ‘국장’이라는 직책이 뭔지 궁금해져서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해보았다. ‘국장’(局長)이란 “기관이나 조직에서 한 국(局)을 맡아 다스리는 직위.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회사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 부서 팀장님’ 역할 비슷한 것이구나 하고 이해했다. ‘팀장님’보다는 좀 더 ‘높으신 분’의 뉘앙스가 강한 것 같지만. 아무튼, ‘국장님’은 광주문화재단이 왜 이 문화기획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러니까, 왜 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일을 재단에서 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하셨다. (나는 원체 집중력이 약할뿐더러, 초등학생 때부터 공식적인 인사 같은 것을 주의 깊게 듣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므로, 일어난 사태들을 정확하게 옮겨 적지 못할 것임을 이쯤에서 밝힌다. 내가 쓰는 모든 글에는 편집과 왜곡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내가 국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수첩에 적어둔 건 이것 한 줄뿐이다. “저희가 다 할 수 없을뿐더러 다 해서도 안 된다.”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순간에 집중력이 유독 좋았거나.

다음으로, 기획자 선생님 세 분이 말씀하셨다. 나에게 1년째 드로잉을 가르쳐주시는 김월식 선생님과, 예전에 내가 반려견 사주[2]를 봐 드린 적이 있는 주성진 선생님, 그리고 처음 뵙는 서지혜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이었다.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예술 경영 컨설팅이 주된 업무라고 하셨다. (예술 경영이 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원래는 음악을 전공하셨던, 예술 경영 컨설턴트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문화기획 일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현재는 마음의 80퍼센트가 ‘매개하는 일’에 가 있다고도 덧붙이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문화 용역”이라고 소개하셨다. 공공기관의 덜 공공스러운 문화예술을 추구하시고, 사는 곳 근처에 평양냉면 집이 새로 생겨서 아주 좋다고 하셨다. (김월식 선생님 설명은 패스. 잘 아는 분일수록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

참여자들의 개인 소개는 생략되었다. 그 대신 벽에 붙은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3].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누가 어떤 답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목에 걸린 이름표[4]는 책상 아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로 골라진 질문은 ‘주로 어디서 노시나요?’인 것 같았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영화 「타짜」에서 나온 김혜수의 명대사를 떠올리셨다. “어떻게 호구들을 판때기에 앉히느냐?” 이게 화투판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문화기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구석에 앉아서 생각해보았다. 사주팔자 스승님(왠지 선생보다는 스승이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아서)께서는 내가 노는 것에만 진심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왠지 처량하다고 느꼈었는데, 유희에 진심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다른 어떤 것에도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승님께선 나보고 물 위에 부유하는 영혼이랬다. 나는 줄곧 어디에서 부유해왔던 걸까? 부유하는 데 장소가 필요하긴 한가? 그때 갑자기 생각났던 것은 우리 집 소파와 화장실 사이였다. 동생이 집에 하나뿐인 화장실에서 안 나오고 있을 때, 그걸 기다리면서 나는 서성거린다. 그러면서 엄마가 틀어놓은 테레비를 슬쩍슬쩍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사람들도 나랑 비슷하게 제일 먼저 집을 떠올렸다. 요즘은 휴대폰이 있으면 어디서든 놀 수 있으니까. 젊은 사람의 노는 방식인 것 같다는 이유로 건대입구에서 방탈출을 해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현직 젊은이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방탈출 딱 한 번 해보고 돈 아깝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다음 질문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질문인 것 같았다. (유추하건대 ‘당신들 뭐 하는 사람인가요’를 친절하고 예의 있게 적어놓은 질문이지 싶었다) 이 질문에 의해 자기소개 비슷한 시간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름이 안 보여서 (보였어도 어차피 까먹었겠지만 - 나는 사람 이름을 얼굴과 매치하는 걸 정말 못한다) 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조향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성남에 살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 중인 사람도 있었고, 주성진 선생님께서 ‘전업예술가’ 안 계신가요? 하고 물으셨을 때 손 들었지만, ‘애 엄마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의 자기소개 첫 마디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보통 자기 이름과 학과, 학번, 출신 지역 따위를 먼저 얘기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특이한 이야기로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컨대, 자신을 ‘일반인 중에 일반인’이라고 소개하신 분이 있었는데, 세상에 어떤 일반인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기억나는 사람은, 아파서 일을 쉬게 되면서 문화기획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어느 여자분인데, ‘배가 꼬록꼬록해서 일을 쉰다’고 표현하셨다. 이것은 위염에 걸렸다는 말이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과 친구들이 칸트의 윤리학을 ‘정신번쩍학’ 따위로 지칭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분도 철학을 전공했다고 하셨는데, 성급한 일반화지만 철학과들의 언어 사용은 참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세 번째 질문은 어떤 기획을 해보고 싶은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을 작성하신 분께서는 확실한 목표가 존재했다. 아이들에 관한, 특히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다른 분께서는 반대로 ‘애들을 배제한 기획’을 하고 싶다고 말하셨다. 아빠들이 술 마시고 주인공이 되는 그런 기획을. 하지만 자녀가 있는 분들이 많다 보니 아이들의 예술 교육이 화두에 올랐다. 가뜩이나 스마트 기기 영향으로 점점 ‘놀이’를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데, AI가 발전하면 얼마나 더 악영향을 끼칠지 다들 염려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시도와 노력 끝에 아이가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눈물을 보이시는 분도 계셨다. 애들 입에서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정말 안타까웠다. 한편으론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내가 어렸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혹시 나도 ‘요즘 애들’에 포함인 건가? 다들 자유롭게 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을 때, 나만 어린이의 상황에 이입해서 ‘과연 나는 잘 놀고 있는 건가’ 고민하고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웃기다.

무슨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자신을 ‘보조자’로 정체화하는 분이 계셨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너무 피곤하고, 예술보다는 예술가가 더 궁금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보통 ‘예술가’라고 하면 앞장서서 나서는 주인공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스스로 보조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셔서 신기했다. ‘보조자’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니 좀 멋진 것 같았다. 판을 까는 사람이 주동자라면, 보조자는 주동자보다는 판에 들어가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면, 나는 집에서 ‘라면 먹기 보조자’이자, ‘드라마 보기 보조자’다. 아빠가 라면을 끓일 때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놀랍게도 자취를 시작할 때까지 봉지라면을 내 손으로 끓여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꼭 엄마가 틀어놓아야 옆에서 같이 보게 된다. 내가 직접 정주행하는 것은 너무 본격적이라서 부담스럽다. 요즘 인기 있다는 ‘폭싹 속았수다’도 엄마가 안 봐서 나도 아직 못 봤다. 뭐든 내가 직접 하려고 하면 그걸 왜 하는지부터 생각하게 되는 데 반해서, 보조자가 되는 것은 요즘 말로 Chill하게 즐기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보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예술가의 뾰족함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것이 곧 예술가의 고유성이기 때문에. 고유성이 많아진다는 것은 다양성이 증대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와 다른 무언가는 삶에 긴장감을 주기 마련이다. 어쩌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런 긴장감에서 오는 게 아닐까?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의 발생만이 자폐적인 상황을 탈출하게 해주니까. 삶에 타자가 주는 긴장감이 없다면, 그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만큼이나 따분하고 지긋지긋한 평화일 것이다[5].

(노트에 적어둔 것을 보아하니) 누군가 좀 더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궁금해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주로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월식 선생님은 기획자의 삶이란 마치 연예인의 삶이랑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딘가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연예인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리고 하루에 5초 미만의 일을 한 달씩 해보고, 인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지켜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출근할 때마다 매일 ‘세계 평화’라고 말했다는 사람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셨다. 놀랍게도 그 당시에 남한과 북한의 사이가 좋아졌었고, 김정은과 문재인이 만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정말 재밌지 않은가!

앞으로 이 문화기획학교는 강의보다는 대화로 진행될 것이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팀원이나 선생님이 안 맞으면 과감히 버리라고 조언도 해주셨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오후 한 시부터 네 시까지는 이 수업을 1순위로 생각해달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위최서린쌤 대신에 이 일을 맡게 된 것이고,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었을 때는 사무 보조 업무 정도를 맡는다고 생각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 급여를 많이 주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기에 최저 시급 정도 받는 일이겠구나 하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니까 나를 말이 씨가 되는 학교의 ‘코디네이터’이자, ‘명리학의 대가’로 소개하시는 것이다. 좀 당황했지만 나는 내가 당황하게 되는 경험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목숨 따위에 심각한 위협이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황하는 것은 재미있다. 스스로는 당황할 수 없으니까. 나는 긴장감이 좋다.



  1. [1] 생각해보면 구글폼이라는 양식 자체가 뭐랄까 공식적이지 않은 느낌이어서, 거기에 답할 때면 나는 (질문지의 공적인 중요성에 비해) 긴장감을 잃어버린 채 대충 끄적이곤 했다. 아마 그런 설문조사들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도 한몫 했으리라. 폰 화면으로 보는 구글폼에서는 질문이나 안내사항은 간단명료하게 잘 보이는 반면에 내가 쓰는 답변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2. [2] 요청해 주셔서 봐본 것이지 나도 개한테 사주가 잘 맞는지는 모른다. (나에게 사주를 가르쳐주시는 스승님께 여쭤봤더니, 무슨 개 사주까지 봐주고 있느냐고 혼나기만 했다) 생시도 잘 모르니까 제대로 볼 수는 없었긴 한데, 여튼 삼주만 놓고 대충 보기에는 ‘대도시의 패션 좋아하는 관종’이란 이미지였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건강은 어떻냐고 여쭤보시기에 소화계통이나 피부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뒤이어 청솔이(개 이름)가 얼굴에 왕뾰루지를 단 채로 들어오는 바람에 다들 난리가 났었다.
  3. [3] 사전 질의의 핵심 질문은 세 가지였다. “말이 씨가 되는 학교의 참여자 동료들에게 궁금한 질문은?” / “말이 씨가 되는 학교의 커리큘럼과 멘토, 진행에 대하여 궁금한 질문은?” / “말이 씨가 되는 학교에 참여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은 말은?”
  4. [4] 이름표는 ‘말이/씨가 되는/학교’라고 적힌 포스터 한가운데에 각자의 이름이 삽입된 디자인이었다. 그러니까, 내 이름표에는 ‘말이/이소정/학교’라고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5. [5]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나도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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