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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라는 얘기를 듣고 글을 썼었는데, 주성진 선생님께서 내 글의 잘못된 부분들을 정정해 주셨다. 일단, 출처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출처를 명확히 알려 주셨다. 씨알 함석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지난 수업에서 안 알려주셔서 내가 오해했거나, 아니면 그냥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큰 문제는 아니다. 물론 함석헌 선생님께서 문제 삼지 않는다면 말이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지난 수업에서 말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던 것 같다며, 씨알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조금 죄송했다. 사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딴소리를 적었던 것인데 말이다. 그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첫째, ‘말이 씨가 되는 학교’라는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관련성이 있나 싶긴 하지만), 둘째는 그냥 남자친구랑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그러하듯이) 내가 하는 말에 대고 애먼 소리 해대는 남자친구가 귀여웠기도 하고. 걔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니, 무슨 얘기 하는지도 궁금해져서 계속 대화를 나눴고, 글로 써 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적어두었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말이 씨가 되는 학교’ 관계자(?)분들은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미안하게 됐습니다.)[1]
이번 수업은 기획자 선생님 세 분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아직 초반이기도 하고, 참여자들이 자신과 잘 맞는 멘토를 찾아가려면 세 분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획’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 자료는 모두에게 공유되었으므로 내가 이 글에서 요약 정리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세 시간짜리 강연 내용에 대해 적으면 너무 길기도 하고. 그냥 내가 기억나는 한에서, 적고 싶은 것 위주로 줄줄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김월식 선생님, 서지혜 선생님, 주성진 선생님 순서로 대략 1시간씩 강연을 진행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문화 기획은 자신의 속도를 찾는 것’이라는 멋진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고 바로 이 강연을 40분 안에 끝내야 하는지 확인하셨다. 역시 기획은 여러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뭐야 싶겠지만 사실 정말로 유익한 강연이었다. 나는 집중력이 원체 안 좋은데도 3시간을 풀집중해서 들었으니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1도 변화시켜 보지 않은 사람은 타자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는 멋진 말도 해주셨다. 그리고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선민의식을 버리고 본인부터 치유할 것 또한 강조하셨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 가슴이 뛴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즐거웠다는 뜻이다 / 그러니 사랑도 문화기획도 다 진심으로 해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었을 것이다.
뒤이어 서지혜 선생님께서 (기획을 통한) ‘치유’의 경험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는, 김월식 선생님의 강연과 약간의 어긋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설명하기가 조금 애매하고 또 어렵지만, 어쨌든 나는 서지혜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아름다운 기획들의 기저에 그런 선민의식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기획자가 어떤 메타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치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선사해주기 위하여 기획을 한다면, 그 인간은 정말로 본인의 인생부터 다시 기획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어떤 메타적인 위치’ 그딴 건 없으니까. 말하자면 당신 머릿속에서나 만든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너도 인간이면서, 그러니까 사회적인 존재면서, ‘문화’를 벗어난 어떤 초월적인 위치에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도 이 세상에서, 이 시간 위를 달려 나가고 있으면서, 혼자서 갓길 주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비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의 ‘곁에서’ 문화를 매개하는 기획자라면, 자신의 기획에 참여하게 될 사람들이 치유 받는 걸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 좋은 문화기획자라면, 애초에 그런 ‘어떤 메타적인 위치’를 상상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가 애초부터 사람들과 함께, 평등한 위치에서 자신도 참여한다고 생각한다면, (같이 변화해 나가면서) 서로 치유하고 치유받기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한 기획 태도는 딱히 부적절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방금 아름답다라는 말을 적었는데, 쓰고 보니 드는 질문이다. ‘아름답다’라는 대체 것은 뭘까? 마침 주성진 선생님께서 매우 유용해 보이는 세 단계의 질문을 소개해 주셨다. 첫째로, “OO가 뭘까?” 질문해보고 답이 안 나오면, “OO적인 건 뭘까?”를 물어보고, 그래도 생각이 잘 안 나면 “OO적이지 않은 건 뭘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흠 그래도 잘 모르겠다. 아름답지 않은 것⋯⋯. 생각해 보자니 어렵다. 주성진 선생님께선 기획 단계에서 예산을 2조라고 생각해보라는 꿀팁도 주셨다. 가령, ‘이번 예산은 200만 원이니까 맞춰서 기획하자’라고 해 버리면 생각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생각을 넓히는 단계에서부터 그런 것들을 의식하는 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 중에, 웹툰이 원작인 케이스가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현실적인 생각부터 먼저 해 버리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지니까.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 아름답지 않은 것⋯⋯. 현실적으로도 비현실적으로도 생각하려고 애써 봤지만 마음에 드는 말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 [1] 남자친구는 내가 철학적으로 엄밀하지 않은 얘기를 하면 꼭 그걸 가지고 뭐라고 뭐라고 한다. 나는 철학과도 아닌데! 우이씨우이씨. 그와 그의 몇몇 친구들을 본 뒤로, ‘철학과에는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말꼬리 잡는다고 안 혼나봤던 사람이 있긴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아마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끼리끼리 만난다고, 나도 처음에는 답답해해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재미도 있고 하니 어느 순간에는 그 말꼬리 잡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돼 버린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글도 그렇게 쓰게 된 것이었다. 쓸 때는 남친 귀엽다고만 생각만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약간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괜히 똑똑한 척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언젠가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인문학 전공하더니 변명만 잘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