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벌써 10회차라니, 시간이 빠르다.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났다. 이 수업은 앞으로 네 번 남아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이 짧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이 씨가 되는 문화기획학교’가 사실상 인생을 탐구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멘토 선생님 세 분의 성향은 각각 다르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 기획의 동기가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는 뜻이 통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이제는 기획 그 자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논의할 타이밍이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아주 많은 시간을 각자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데 투자했었다. 지난번에는 몸의 관성까지 실험해보지 않았던가! ‘나’를 탐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기획’이라는 것을 내놓을 방식까지 고민하기에 14주라는 시간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뭐, 꼭 이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 다들 팀별로 시간을 내어 보충수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참여자라면 지금쯤 ‘정말 이 기획이 실현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초창기보다 더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래도 아무 얘기나 자유롭게 해볼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이야기는 좁혀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거기에서 오는 중압감은 상당할 것 같다. 나를 탐구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탐구한 나의 서사와 딱 맞물리는 기획 방식을 찾는 일도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희주 님이 오셨다. 그간 영화 촬영 현장에서 미술감독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다고 한다. ‘숨은 돈 찾기’라는 제목의 영화 제작에 관여하셨는데, 어떤 작품인지는 뉴스 기사 링크로 설명을 대신해 주셨다[1]. 희주 님께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화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구체적인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주성진 선생님께서 희주 님의 영화 일에 대해 집요하게 여쭤보시길래, 나는 선생님께서 영화 촬영 현장을 되게 궁금해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늦게 오신 진희 님을 기다려주신 것이었다. 조금 감동이었다.

나는 수업 전에 희주 님께서 카톡으로 재밌는 아이디어가 생겼다고 미리 알려주셔서 기대했었다. 희주 님께서는 기획 구상안을 ppt로 만들어서 가져오셨는데, 그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어중간한 사람들을 위한 날」 문화기획서”. 희주 님의 핵심 아이디어는 ‘어버이날’, ‘근로자의 날’처럼 특별한 날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희주 님에 의하면, “어중간한 사람들을 위한 날”을 기념함으로써, 우리는 ‘꼭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어중간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어중간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획의 주요 타깃은 다음과 같았다. ① 소속감 없는 사람들, ② 눈에 띄고 싶은 사람들, ③ ‘보통’으로 정의된 사람들, ④ 존재 자체로 의미 있는 사람들.

“어중간한 사람들을 위한 날”의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였다. ① 그냥 “의자만 있는 공간”에서 편하게 앉아 있기, ② 혼밥도 단체 식사도 아닌 애매한 피크닉 하기(“중간밥상”), ③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내 기분만 적어 놓아도 되는 명찰 만들기(“이름 없는 명찰”). 그 밖에 “어중간한 사람들을 위한 날”을 기념하는 기념품을 만드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다.

모든 기획은 ‘어중간함’을 존중하고 ‘어중간함’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희주 님의 프로그램들에서 느껴지는 일정한 거리감 같은 것이 좋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지는 않지만(애초에 ‘어중간’한 정체성으로 똘똘 뭉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니까), 고독하지는 않을 만큼의 거리 조절이 느껴졌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희주 님의 기획은 ‘느슨한 연대’를 표방하는 것 같았다. (근데 표현을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어중간’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이 기획에는 세련된 말보다 애매한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기념의 부재를 기념하는 아이러니” 같은 희주 님의 표현들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말꼬리 잡기 같기도 한데, 나는 희주 님께 이런 질문을 했었다. “사람들에게 소속감이 필요한 건가요?”. 희주 님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희주 님 말이 대충 다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희주 님 말처럼 우리는 어딘가에 꼭 속하지 않아도 되고,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는 이런 의문을 가졌다, “그렇다면 그냥 존재하기만 하면 되잖아. 왜 그걸 기념까지 해야 하지?”.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까 조금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존재 자체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희주 님께서는 사람에게 꼭 소속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하루 정도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해 주셨다. (쓰다 보니까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이 단 한 군데도 소속되지 못하면 - 소속감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면 - ,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있다면 ‘자연인’처럼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희주 님의 ‘어중간함’이라는 키워드가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많은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대부분 ‘어중간’하게 소속되어 있으니까. 예를 들면 ‘시민’, ‘XX 년생’, ‘인류’⋯⋯.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소속감이 느껴질 정도는 아닌 바운더리가 세상에는 아주 많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희주 님께 ‘기획을 잘 하시는 데, 그 기획에 자기가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반대로 이 기획에서 희주 님만 보이고, 다른 참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김월식 선생님께서 “자기가 없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해 주셨다. “희주 씨가 없어도 누군가 할 수 있는 기획”같다는 말씀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예전부터 월식 선생님께서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기획”을 선호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월식 선생님께서는 ‘기획하는 업자’(참여자들을 도구화시키는)가 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셨는데, 내가 이해한 대로 월식 선생님의 설명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획에 나의 삶과 철학을 녹여 내려고 하면, 분명 처음에는 매우 서툴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들이 추려지면서부터는 충분히 ‘업자’ 노릇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전부터 미리 업자처럼 기획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나는 그런 경지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월식 선생님은 또한 기획에 본인을 심는 것이 윤리적이며, 타인에게 동화될 여지를 준다고 말씀해 주셨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기획에 녹여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희주 님 ppt를 읽고 있었는데, 기획의 ‘주요 타깃’에서 “눈에 띄고 싶은 사람들”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해 보았다. 만약 희주 님께서 “눈에 띄고 싶은 사람”이신 거라면, 아예 그냥 희주 님을 위한 기념일을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일 년 중 희주 님의 운세가 가장 좋은 날을 기념한다거나, 희주 님 굿즈를 만들어서 판다거나⋯⋯. 나는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희주 님께서는 별로 내키지 않으신 것 같았다.



나는 여기까지 써 놓고, 약간 머리에 쥐 난 것 같은 느낌으로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다음 수업까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피곤한 일들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이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조금 피곤했다. ‘어중간함’에 대해 어중간하게 생각해 보다가 생각이 뒤엉켜버렸나 보다. 나도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한데 희주 님 본인께서는 얼마나 고민이 많으실까? (이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서 계속된다⋯⋯)

그다음 순서는 인디밴드 팀(진희 님, 현진 님)의 발표였다. 두 분께서 뭔가 모범생처럼 발표 자료를 준비해오셨다. 대학 조별 과제의 발표문처럼 잘 정리된 자료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다들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심지어 발표하시는 분들마저도!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인디밴드 팀은 조별 이야기 시간에 가장 신나서 이야기하는 쪽이었다. 지난 시간에만 해도 그랬다. 서지혜 선생님 조는 <아이들>과 <교육>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신중한 대화를 나눴다. 김월식 선생님 조는 각자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주성진 선생님 조에서는⋯⋯ >>인★디★밴★드 공★연<< 얘기를 했다. 흡사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사이에 낀 트위터 같았다.

진희 님과 현진 님도 당황하셨다. 분명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에는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정리해서 발표하니까 왜 재미가 없지? 주성진 선생님께서, 이게 ‘말’로 얘기를 나누던 것을 ‘글’로 정리해놓으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설명해 주셨다. 분명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에는 인.디.음.악.의. 장.벽.을. 낮.추.자 같은 허울 좋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 텐데도,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고 그걸 발표까지 하다 보면 괜히 폼 나는 말들을 갖다 붙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자기소개서 아닐까?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라고 부를 만큼, 자신을 한껏 부풀려 구라 치는 사람들이 이 대한민국에만 해도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자기소개를 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웅장한 얘기를 늘어놓지는 못할 것이다(아니면 말고).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현진 님과 진희 님이 인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게 꼭 ‘인디 음악의 진입장벽을 낮추자’는 취지로 연결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이런 지적도 해주셨다. ‘인디’라는 말 자체가 자유로움, 고유함 같은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인디 음악을 모두가 즐기게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덧붙여, 지금 인디밴드 팀에는 여러 목적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마음, 인디밴드를 일반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마음, 우리끼리 특별하게 놀고 싶은 마음⋯⋯. 여기서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기획의 방향도 뚜렷해질 것이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모두를 겨냥하는 홍보 멘트보다는, 역으로 ‘인디 음악을 1도 모르는 새끼들은 오지 마!’라고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넓은 곳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것보다, 아예 좁다란 곳에 ‘진짜’들만 모여서 미어터지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해주셨다. 보통 우리가 공연을 보러 갈 때는 누가 공연하는지에만 관심을 갖지만, 섭외하는 입장에서는 그보다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실감하게 되었다. 좋은 공연자를 섭외하는 게 당연히 중요하지만, “힙한” 공간을 찾는 것 또한 그것 못지않게 중요했다. 힙한 공간이라⋯⋯. 일단, 경기도 광주시는 꽤 괜찮은 공간인 것 같았다. ‘인디’라는 음악적 변두리와 ‘광주’라는 지리적 변두리의 만남이랄까? 대화를 하다 보니, 이 지역의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카페(월식 선생님께서 적극 추천하셨다)나 컨테이너 같은 공간들을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예 3911로 가서 밴드 멤버들이랑 다 같이 도자기 굿즈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제 주성진 선생님 조에서 김월식 선생님 조 순서로 넘어왔다. 먼저, 혜림 님은 불만이 많아 보였다. 동시에 한탄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혜림 님은 내 얘기를 굳이 왜, 남들과 같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게다가 자기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하셨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정말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뭘 하시진 않았고, 누군가 먼저 무언가를 하면 그걸 따라서 해본 경우가 많으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자녀 분이 베이킹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아이는 일찌감치 흥미를 잃어버린 베이킹을 혜림 님 혼자 계속하고 있으시다고 한다.

뭔 얘기하다가 이런 얘기까지 나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3911 멤버들끼리 싸운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는 병묵 님과 혜림 님 사이의 트러블이었다. 당시에는 뭔 얘긴지 제대로 이해가 안 됐는데, 저녁에 병묵 님이 차를 태워주셔서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그래서 한 쪽 입장으로 편향된 얘기일 수 있다 - 하지만 병묵 님의 억울함이 나에게는 매우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혜림 님께서 병묵 님께 뭔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물어보셨고, 병묵 님이 뭔가 잡일 같은 것을 부탁했다. 혜림 님은 조금 도와주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재미없어. 나 안 해!” 그걸 계기로 두 분이 싸우다가, 병묵 님이 혜림 님께 왜 겉과 속이 다르냐고 따졌고, 혜림 님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했다. 혜림 님의 주장에 의하면 혜림 님은 전혀 표리부동하지 않다. 달리 표현하자면 ‘표리동’하다. 병묵 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할 때만 빼고 다 표리부동하니까, 너는(혜림 님은) “표리잠깐동”이라고. 그 말을 듣고 모두가 빵 터졌다고 한다. 그렇게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기획에 대한 고민을 겸해서, 혜림 님은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셨다. ‘다들 그런 거 아닌가?’

월식 선생님께서는 이 짧은 (기획 학교) 과정이 혜림 님의 속도와 안 맞는 것 같다며, 억지로 뭔가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냥 이 수업을 완주하는 것까지만 해도 된다고 하시면서. 혜림 님께서는 안 그래도 고민이시라며, 챗지피티(ChatGPT)한테까지 자기가 이걸 하는 게 맞는지 물어봤는데도 도저히 그만 둘 명분을 찾지 못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혜림 님은 ‘모두에게 민폐다’라는 좋은 명분으로 그만 둘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혜림 님이 이 과정에 계속 참여하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음은 월식 선생님께서 혜림 님과 씨름하시느라 자기는 뒷전이었다는 병묵 님의 차례였다. 병묵 님의 타이틀은 이러했다. “我 탐구 설명서”. 하필 설명‘서’의 형태로 만드는 이유는, 삶에서 뭔가 막히는 순간이 있을 때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매뉴얼이자 참고서인 것이다. 병묵 님은 어쩌면 이게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교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다. 我 탐구 설명서에 들어갈 내용은 (병묵 님의) 일상 속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서 음악을 틀어본다거나, 하루 종일 묵언수행을 한다거나, 일하는 동안 오른손만 쓴다거나⋯⋯, 그런 것들을 시도해 보고 글로 아카이브 하는 것이 병묵 님의 기획 아이디어였다. 이전에 월식 선생님께서 (생활에서 벗어나서 나를 탐구하는 것에 반대하시면서)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는데, 병묵 님도 이에 동의하여 일상과 관련된 기획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염병할, 2주 만에 쓰려고 하니까 수첩에 적어놓은 걸 봐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다음부터는 밀리지 않고 써야겠다. 사건을 글로 옮겨 적는 일에는 애초부터 많은 오해의 씨앗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씨앗들을 2주 동안 효과적으로 발아시켰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잘 적어보도록 하겠다. 병묵 님 죄송합니다⋯⋯. 각설하고, (많은 얘기들이 오간 것 같지만, 내가 이해한 것만 대충 정리해 보자면) 병묵 님께서는 ‘나(我)’와 ‘회사(일)’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 고민이셔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부터 생각해 보셨는데 그것도 잘 안 떠올라서, ‘나는 뭘 좋아하나(혹은 싫어하나)?’라는 질문으로 옮겨갔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이런 질문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업무를 하다 보면, 이걸 왜 하는지는 별로 생각 안 하게 되고, 그저 결과만 예측하게 된다. ‘왜’ 없이 ‘어떻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병묵 님의 나(我)는 어느 정도 객체화되고 말았다. 물론 누구도 진정한 나(我)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겠지만(종교인이라면 몰라도), 어쨌든 병묵 님은 “마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흔한 직장인의 비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병묵 님은 이러한 느낌을 벗어나기 위해서 꼭 직장을 벗어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병묵 님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는 것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으니,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예를 들자면, 병묵 님처럼 ‘예술계에서 일하는, 예술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뭘 더 하지 않고 빼보는 것도 괜찮다”고도 말씀해 주셨는데(그렇게 수첩에 적혀 있는데), 내가 적어놓긴 했지만 뭔 얘기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느낌을 ‘적는’ 것은 “1차적”이라며, “2차적”까지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2차적”이란 기록을 넘어 의미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 밖에도 많은 얘기가 오갔고, 병묵 님께 친숙한 매체인 ‘엑셀’을 활용해서 모든 느낌을 엑셀로 정리해 보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서지혜 선생님 조 차례였다. 다른 조와 다르게, 서지혜 선생님 조에서는 하나의 공동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 같이 읽을 책도 정했다며 보여주셨는데, 딱 봐도 되게 어려워 보였다)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에 앞서, 인영 님이 단톡방에 사진들을 공유해 주셨다. 초등학교 교실의 게시판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다 똑같이 생겼는데, 놀랍게도 다섯 장의 사진이 각각 다른 교실이라고 했다. 게시판에는 (아마도 지친 선생님들이 그저 시간 때우기용으로 나눠주는 게 분명한) 천편일률적인 학습지들이 가득했다. 이를 두고, 인영 님은 “모두의 눈동자가 공허해지는 게시판”이라고 표현하셨다. 인영 님의 특기가 ‘사람 관찰하기’와 ‘평등하게 대하기’라고 하셨으니, 아마 정확히 관찰하신 게 맞을 거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병묵 님은 그 사진들을 보고 다들 열심히 한 것 같아서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다.

인영 님은 plan A만 있던 교육 현장에, 대안적인 plan B가 필요한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그런데 소미 님에 의하면, 선생님들에게는 그런 돌파구를 찾을 기회도 여유도 없는 게 실정이다. 그래서 더더욱 선생님들이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립할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들 개개인의 삶이 학교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인영 님은 당장 문제 되는 것 중 하나로 교사 간의 커뮤니티가 부재하다는 것을 뽑았다. 그 때문에 아이들도 교사들도 “섬처럼”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섬’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떠올렸다. 두 줄짜리 짧은 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이 시를 읽으면 몇 개의 섬들이 거리를 두고 둥둥 떠있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아이들이 작은 섬이라면, 거친 물살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을까. 그걸 어른들이 붙잡아줄 수 있을까. 뭐 그런 청승맞은 생각이나 들었는지.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소수로 진행해도 상관없으니, 기획의 대상을 좁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예를 들면 ‘첫 부임한 선생님’ 같은 식으로. 왜 그래야 하냐면, 참여자들 ‘그룹’으로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왜 안 되는 건지는 머리로는 알 것도 같은데 잘 와닿지는 않는다. 기획을 많이 해본 게 아니라서⋯⋯)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이 기획을 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동시대적인 예술 ‧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올드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교육을 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더라도 말이다. 비슷한 조언을 다른 멘토 선생님들께서도 해주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기획을 단점 위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해 주셨는데, 기존 것에서 조금만 달라져도 훨씬 좋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예전에 남자친구가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주했을 때,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지 새로워서 그게 옳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소미 님께서는 최근에 하신 고민을 얘기해 주셨다. 소미 님은 줄곧 “쌍방향” 교육을 추구하셨는데, 어느 날엔가 자기가 사실은 “더 나은 일방향” 수업을 했을 뿐이었던 건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으셨다고 한다. 나는 약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분명 아까는 자신의 교육 철학이 서야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은데, 소미 님은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걸 그대로 실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아닌가? 더 가치관이 확실해야 되나? 왠지 내 느낌 상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뭐랄까 좀 더 방법적인(skill) 영역에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병윤 님의 차례였다. 병윤 님께서는 맨 처음 나왔던 희주 님의 기획을 상기하며, 병윤 님도 스스로 되게 어중간하다고 느끼시기 때문에 (아예 모르는 인디 음악 팀과 같이 하는 것보다는) 희주 님과 같이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 참여하려던 곳에 있어야, 자신이 뭔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엔 꼭 뭔가 기여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기여하는 게 너무 좋으시다면 모를까.



  1. [1] https://news.tf.co.kr/read/entertain/22188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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