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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지각한 날이었다. 몸이 안 좋아서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왜 아픈지는 알 수 없다. 너무 더워서 더위를 먹은 것인지, 아니면 춥다고 에어컨을 틀어서 냉방병에 걸린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최근에 타투를 받아서 이상 반응이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도착해 보니 이미 조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자리에 모여있는 주성진 선생님 조에 합류했다. 희주 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을 도구화하면 안 되죠?"

지난번 월식 선생님께서 해주신 피드백에 대한 얘기였다. 희주 님은 월식 선생님의 조언을 한 3분의 1 정도만 납득한 것 같다고 (매우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희주 님의 입장은 말 그대로 ‘애매’ - 혹은 ‘어중간’ - 했다. 예술가 혹은 기획자로서의 이희주는 상업 예술가와 작가 사이 그 어디쯤에 있었다. 상업 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희주 님은 ‘휴머니스트’ 취급을 받으신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서사 따위를 도대체 왜 고려해야 하는지 희주 님께 따져 물었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되는 학교에 온 희주 님은 김월식이라는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멘토 김월식은 참여자들을 도구화하는 것, 즉 “업자처럼” 기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요컨대, 희주 님은 업자들 사이에서는 예술가이고, 예술가에게는 업자 같다는 평을 들은 것이다. 그렇다면 희주 님은 “애매”한 사람인가? ‘특이하다’의 반대말이 ‘애매하다’라면, 희주 님은 애매함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언젠가 봤던 유튜브 영상에서는 머리칼의 질감이 한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희주 님은 말이 씨가 되는 학교에서 가장 화려한 머리칼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사람을 도구화하지 말자는 데에 3분의 1 정도 동의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기획을 하시는 수밖에 없는 희주 님이 당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어중간”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모을 것인가? ‘어중간한 사람들을 위한 날’을 만들고, 어중간함을 ‘celebrate(희주 님의 표현을 빌림)’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중간한 사람들을 데려와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중간한 사람들이 ‘저는 어중간한 사람입니다’하고 제 발로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의 주체성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얘기들이 오가던 중, 어중간함에 대한 테스트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리는 모두 특정한 몇몇 영역에서만 어중간할 것이기 때문에[1], 자신이 어떤 영역에서 어중간한지 알아보는 테스트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불현듯 우리의 대화는 ‘어중간’의 삼천포로 빠져들어 갔다. ‘어중간함’이 무엇인지 얘기하다 보니 대화가 철학적으로 어려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중간함을 직접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중간함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것의 저편으로만 정의될 수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변두리가 있어야 어중간함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 변두리라는 것이 상당히 가변적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 상태가 지속되면, ‘히키코모리’라는 극단적인 변두리에 속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어중간함을 직접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조금 우회하는 방식으로 어중간함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스스로 어중간하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소속감이 없어서인 것 같았다. 말하자면 정체성이 부재하는 상태를 ‘어중간’이라고 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례가 또 있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인플루언서였는데, MBTI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16가지가 전부 다 나왔다고 대답한 것이 유명세를 탔다. MBTI 검사에서 16가지가 모두 나온다는 것은 어떤 MBTI 성격유형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해당 인플루언서는 MBTI 검사에서만큼은 가장 어중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람을 ‘어중간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철학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자(왜냐하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지니까.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주성진 선생님께서 기획의 실천적인 측면으로 대화를 전환하셨다. 우선, ‘축제’라는 방식에는 좀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왜 하필 축제여야 하는지, 축제라는 방식이 과연 적합한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중간함을 기념하는 방식이 마치 성물 없는 종교처럼 보일 수도 있으므로, 어중간한 신화나 의례, 상징 등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해 주셨다. 그 밖에도 (‘축제’의 형식으로 기획할 경우) 인디밴드 기획과의 접점을 찾아본다거나, (기획서 작성 과정에서) ‘어중간’이라는 단어의 동의어를 찾아보는 것도 제안해 주셨다.

나는 이쯤에서 다른 조를 기웃거리러 갔다. 서지혜 선생님 조가 재밌어 보였다. 가 보니까 병묵 님[2]이 있었다. 혜림 님이 자꾸 눈빛으로 자기에게 S.O.S.를 보내서 그냥 나와버렸다고 했다. (병묵 님은 오늘도 혜림 님에 밀려 찬밥 신세였다. 월식 선생님께서 자꾸 “병묵이는 됐고, 혜림이는⋯⋯”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들었다)

이 조의 핵심 사안은 요약하자면 “선생님들의 자신 찾기”. 선생님들이 고된 교육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이 기획의 목표였다(이를 두고 누군가 농담했다. 연금을 충족시켜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내 생각엔 병묵 님이었을 것 같다). 많은 교대생들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입학하지만, 막상 선생님이 되고 나면 자신의 일을 그저 ‘직업’으로만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건 열악한 업무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인다. 일단 본인부터 지켜야 아이들도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교사라는 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선생님 개인의 중심이 잡혀있어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심정적으로 소모된 많은 교사들이 일명 ‘학습지 돌리기’를 하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학교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이 조의 문제의식이었다.

내가 많은 부분에서 동감할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를 두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힘든” 아이들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해 주셨다. 요즘에는 힘든 아이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면서,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자신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교사라는 직업에 상상 이상으로 큰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꼭 거창한 소명의식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가정사적인 문제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간적인 마음이 많은 선생님들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 한 명이 모든 아이들을 오은영 박사처럼 케어해줄 수는 없는 노릇. 그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과의 거리 두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마치 내담자와 거리를 조절해야 하는 심리상담사처럼 말이다[3].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조에서는 선생님들을 위한 워크숍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취지였고, 최소 1박2일에서 최대 2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었다. 인영 님은 “섬처럼” 살고 있는 선생님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놀다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기회에 본인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과 같은 정성을 선생님도 감각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이셨다. 소미 님은 마늘을 짜는 도구(일명 ‘마늘 짜개’)로 흙을 짜보는 체험을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는데, 서지혜 선생님께서 농사와 관련된 기획을 하는 셰프를 알고 있다며 그분을 초청해서 함께 얘기를 나눠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또, 서연 님은 코바느질과 관련된 활동을 제안해 주셨는데, (다는 못 알아들었지만) ‘사슬뜨기’와 관련된 활동이었고 재밌어 보였다. 보통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체험 활동들을 선생님을 위해 기획한다고 하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일부러 아이들이 받는 수업을 선생님들이 대신해보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봤는데, 소미 님이 그럴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해주셨다.

이제 김월식 선생님과 혜림 님은 뭘 하시는지 궁금해져서 사무실 안으로 가 보았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지금 혜림 님의 진로 상담 겸 고민ㆍ심리 상담 중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고민이시냐고 혜림 님께 물어봤더니, 고민에 끝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셨다. 월식 선생님은 혜림 님께 ‘욕심 내려놓기’와 ‘잘 하려는 생각 그만하기’를 요구하셨다. (이전에 혜림 님이 스스로 욕심이 너무 많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보통은 아예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해버린다고 말씀하셨었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면 혜림 님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고 하셨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처럼, 내가 이 일을 못해도 되는 이유(즉, 핑계)를 열심히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변명이 많은 사람으로서 나는 혜림 님의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고 마음 먹는대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성실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욕심을 내려놓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하기’와 ‘안 하기’ 사이의 이중구속 때문이다. (시험 기간인 학생으로 예를 들어보자. 지금 공부를 하면, 공부를 했는데도 이 정도밖에 안 나온 성적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즉,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공부를 안 한다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지금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나’를 책임져야 한다. 공부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므로. 그러니 어느 쪽을 선택하든 책임감은 나를 갉아먹는다. 결국에는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스트레스만 받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혜림 님께 궁금했다. 예전에 혜림 님은 선택하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아무 일도 안 하는 편이라고 얘기하셨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이 유보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싸울 때 침묵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 되듯이, 내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가 지연되면서, 나는 아직 선택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선택’한 사람이 된다. 나는 묻고 싶었다. 혜림 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며 살고 계시는지?

혜림 님께서 내 말에 많이 공감하시는 것 같았다. 혜림 님은 자신이 항상 도피해왔다고 대답해 주셨다. 결혼도 도피를 위해서 한 것이었고, ‘안 하기’도 도피의 한 방법이었다(옆에 있던 병묵 님이 펄쩍 뛰며 말씀하셨다. 도피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고? 말도 안 돼. 나는 결혼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는데!). 하지만 완벽한 도피란 있을 수 없다. 그런 게 있다면 나나 혜림 님이나 이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덜 힘들 수는 없는 것인가? 생각해 보다가 나는 최근에 있었던 내 경험을 혜림 님께 들려드렸다. 애인이 내 집에 놀러 왔고, 나는 방 청소를 안 한 (그러나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침대에 뻗어 있었더니 애인은 내 방을 청소해 주었다. 나는 특별히 힘들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누군가 나에게 청소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봤다면 아마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요컨대,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다. 그런데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받았더니, 집이 깨끗해진 것 외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애인에게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냥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일에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건 나에게는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책임을 품앗이하는 일이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혜림 님께서 물어보셨다.
스스로 그걸 당연하게 여길까 봐 두렵지 않나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나였으면 그게 두려워서라도 도움을 절대 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았다. 왜일까.

애인이 나를 믿어준 덕분인 것 같았다. 나에게는 내가 타인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별로인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나의 애인은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믿는다. 내가 나를 믿는 것보다도 그 사람의 사랑을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 안에 내가 있다. 또한, 내가 도움받는다고 해서 그가 나를 계속 사랑할 거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라는, 그런 믿음도 내 안에 있었다.

만약에 사랑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철학적인 사고에 기대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이것도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생각이다. 내가 가진 책임의 대부분은 허상에 가까웠다. ‘좋은 딸이 되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좋은 딸이 대체 뭔가? 대기업에 가고, 결혼을 제때 하고 애를 한 두어 명 낳으면 좋은 딸인가? 용돈은 백만 원을 드리면 십만 원을 드렸을 때보다 더 좋은 딸이 되나?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내가 진짜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책임감과 그걸 다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언제나 명료하지 않고, 뭉게뭉게 안개 같은 덩어리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얘기다. 혜림 님은 어떨지 모르겠다.



  1. [1]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어중간한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것이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예를 들어 키는 어중간한데 머리 크기는 특출난 사람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2. [2] 김월식 선생님 조이다.
  3. [3] 교사가 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교사가 학생의 어려움을 외면해버리는 것도 문제적인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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