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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도 뇌를 다 빼버렸다고 했어. 그건 그냥 콧물을 만드는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심장으로 생각한다는 게 어쩐지 로맨틱하게 들렸다. 맥박이 뛰는 대로 살아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이 싫어, 그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우리도 뇌가 싫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확신에 차서 얘기할 수 있었을 거야.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도. 무념무상으로 작동하는 생존의 리듬을 꺼내어 보여주기만 했으면 됐겠지.
집에서 광주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좌석에 앉은 내 몸은 항상 굳어있다. 나는 버스에 앉으면 주로 휴대폰을 본다. 보다가 보다가 질리면 몸을 배배 꼬면서 잡다한 생각을 한다. 별 볼 일 없는 상념들이 풍경처럼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심장으로 생각한다는 게 어쩐지 로맨틱하게 들렸다. 맥박이 뛰는 대로 살아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이 싫어, 그런 말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우리도 뇌가 싫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확신에 차서 얘기할 수 있었을 거야.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도. 무념무상으로 작동하는 생존의 리듬을 꺼내어 보여주기만 했으면 됐겠지.
월식 선생님께서 우리가 재단의 공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특별한 강의를 준비해주셨다. 무용학 박사이자 '몸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신 해라 김성원 선생님을 모시고 간단한 몸 치유 특강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했다. 몸에 대한 워크숍인 만큼, 편안한 복장으로 오라고 당부하셨는데, 입고 가려던 바지가 하필 전날에 더러워지는 바람에 긴 치마를 입고 가게 되었다. 안에 체육복 바지 같은 것을 입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참, 작년에 입던 여름 옷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도착해 보니까 소미 님께서 상추를 한아름 가지고 오셨다. 종류도 세 가지나 되었다. 이 상추들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급히 따놓은 것이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해주셨다(덕분에 오늘 저녁에는 상추 낫토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장마가 오면 상추가 너무 빨리 쑥쑥 자란다고 한다. 신기했다. 비를 맞고 이파리가 상해서 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튼튼한가 보다.
숏컷에 민트색 운동복을 입은 여자 분께서 들어오셨다. 해라 선생님이었다. 나는 사람을 보고 나이를 가늠하는 것에 영 소질이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삼십 대에서 최대 사십 대 초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월식 선생님께서 알려주시기를, 오십 대 초반이라고 한다. 세상에! 역시 사람이 운동을 해야 젊게 살 수 있는 거 구나, 라고 생각했다. 태닝을 한 것 같은 구릿빛 피부가 해라 선생님의 활기찬 분위기를 더 끌어올려 주었다. 지금껏 피부색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나는 처음으로 선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워크숍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나는 해라 선생님의 높은 텐션이 어딘가 익숙했는데, 예전에 한창 좋아했던 무용수 모어(모지민) 님이 생각났다. 몸을 쓰는 사람들은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우리는 그동안 각자가 몸을 얼마나 혹사시켜 왔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실제로 뼈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몸은 낯설었다. 특히, 귀나 턱을 마사지하는 건 인생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래도 해 보니까 할 만했다. 나는 오른쪽 왼쪽도 헷갈려 할 정도로 극단적인 몸치인데도, 해라 선생님께서 쉽게 가르쳐 주셔서 동작들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크게 아프신 이후로 몸이 조금 불편해지신 월식 선생님께서도 평소에 안 되던 동작(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기)에 성공하셨다. 나는 몸이라는 분야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마지막에는 다 같이 춤을 추었다. 진희 님께서 깜찍한 트월킹도 보여주셨다. 나는 춤을 정말 못 추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재밌다고 느껴졌다. 이런 식의 운동이라면 일주일에 두 번씩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크숍이 끝난 뒤에는 두 시간 정도 조별 멘토링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도 나는 세 개의 조를 돌아다니면서 내 마음대로 드로잉을 했다. 서지혜 선생님 조는 다들 엄청 열심이었다. 희언 님은 열 장이 넘는 리서치 숙제를 해 오셨고, 소미 님은 ‘예술 교육을 왜 하고 싶을까’라는 제목으로 지난주 수업에 대한 후기를 적어오셨다. 김월식 선생님 조는 혜림 님 혼자였다(세아 님은 나가셨고, 병묵 님은 다른 일로 바쁘셨다). 주성진 선생님 조에서는 밴드 얘기가 한창이었다. 현진 님은 좋아하는 밴드의 굿즈도 직접 가져와서 보여주셨다.
집에 가는 길엔 음악을 들었다. 이랑이라는 가수의 ‘나는 왜 모를까(Why Don't I Know)’라는 노래였다. 가사를 곱씹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말을 빨리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을 전부 기록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내 머릿속에 보이고 들리는 이 글자들을
전부 뱉어낼 수 있을까
매일 이렇게 떠오르는 말과 글이
머릿속에서 사정없이 중첩되고 중첩되어도
나는 한 번에 다 생각할 수 있는데
근데 이걸 손으로 쓰고 노트북에 쓰고 음성으로 내뱉고
아무리 기억을 해도 이게 그대로 옮겨지지가 않고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얘기밖에 할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들을
내 눈앞에 다시 펼쳐낼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내 몸이 더는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다리가 더는 저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야간에도 운전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언젠가 이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될까
내 머릿속에 있는 이 수많은 말들을 처리할 수 있을까
그때, 그때가 되면 나는 내 연약한 몸에 갇혀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냥
내 몸속에서 나는 그냥 가만히 있다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