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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장소가 광주시문화예술의전당으로 변경되었다(다음 주까지 그곳에서 한다). 왜 옮겼는지 잘 모르겠다. 수업 장소를 옮겨서 좋은 점이 뭔가? 물론 3911에 가서 수업했던 건 아주 좋았다. 텃밭에서 채소도 따오고 예쁜 도자기들도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재단(다들 이곳을 ‘재단’이라고 부른다)에는 딱히 볼거리가 없었다. 웬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동상 말고는. 딱히 특이한 생김새는 아니고, 공공 기관이나 무슨 빌딩 앞에 으레 있기 마련인, 추상적이지만 왠지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 같은(절대로 반사회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었다. 월식 선생님께서도 처음 보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새로 만들어진 건가 보다. 왜 만들었을까? 별로 아름답지는 않았다. 뭔가 기념하기 위해서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트로피 모양 같기도 했다.

장소는 지하 2층의 ‘아카데미 대연습실’이었는데, 무용 연습실 같은 곳이었다. 아주 널찍한 공간이었고, 한쪽 벽은 거울로 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월식 선생님과 나만 벗고 들어왔다. 다시 신발을 신고 돌아와야 했다.

세아 님께서 앞으로 일이 생겨서 못 온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다. 목요일 오후 두 시에 비정기적으로 일정이 잡힐 수 있어 계속 참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세아 님께 몇 번 빠지더라도 계속 참여하는 쪽으로 설득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대학생의 휴학을 만류하는 교수님 같았다. 월식 선생님께서 우리는 예산을 인당 200만 원씩도 줄 수 있는데, 그 일을 하면 얼마나 버느냐고 질문하셨고 세아 님은 약간 뼈아파하셨다. 어쨌든, 오늘은 뒤 일정을 빠질 수 없으셔서 수업 전에 일찍 가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는데 설득을 당하고 가신 세아 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는 아직 모른다[1])

최보라 님께서 지원금 집행 및 정산에 관한 특강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뭔 게다리춤이라도 춰야 될 것만 같은 무용 연습실에서 다 같이 바닥에 불편하게 앉아 보라 님의 설명을 들었다. 꼭 수련회에 온 것 같았다. 보라 님께서 유인물을 나눠주시고 주의해야 될 사항들을 조목조목 자세히 알려주셨다. 하지만 당최 내 머릿속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보라 님께서 설명을 못 하셨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런 안내사항은 본질적으로 나에게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지원금 정산 방법 안내를 들으면서 설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가정통신문을 정독해 본 기억이 없는데, 안내문 같은 것을 읽을 때면 문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책상이 있는 방으로 옮겨 가서 앉았다. 조별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니, 의자에 앉아서 강연을 듣고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적절하지 않나? 아무튼 책상이 있는 곳에서 다 같이 조별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몸이 세 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조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을 수 없었다. 또, 자유로운 이야기 시간이었으므로 산발적인 대화의 흐름을 받아 적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각 조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으면서 드로잉을 했다.





  1. [1] 이 글을 업로드하기 전에 작별 인사와 함께 단체 카톡방을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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