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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지하 2층의 ‘아카데미 대연습실’이었는데, 무용 연습실 같은 곳이었다. 아주 널찍한 공간이었고, 한쪽 벽은 거울로 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월식 선생님과 나만 벗고 들어왔다. 다시 신발을 신고 돌아와야 했다.
세아 님께서 앞으로 일이 생겨서 못 온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다. 목요일 오후 두 시에 비정기적으로 일정이 잡힐 수 있어 계속 참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세아 님께 몇 번 빠지더라도 계속 참여하는 쪽으로 설득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대학생의 휴학을 만류하는 교수님 같았다. 월식 선생님께서 우리는 예산을 인당 200만 원씩도 줄 수 있는데, 그 일을 하면 얼마나 버느냐고 질문하셨고 세아 님은 약간 뼈아파하셨다. 어쨌든, 오늘은 뒤 일정을 빠질 수 없으셔서 수업 전에 일찍 가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는데 설득을 당하고 가신 세아 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는 아직 모른다[1])
최보라 님께서 지원금 집행 및 정산에 관한 특강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뭔 게다리춤이라도 춰야 될 것만 같은 무용 연습실에서 다 같이 바닥에 불편하게 앉아 보라 님의 설명을 들었다. 꼭 수련회에 온 것 같았다. 보라 님께서 유인물을 나눠주시고 주의해야 될 사항들을 조목조목 자세히 알려주셨다. 하지만 당최 내 머릿속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보라 님께서 설명을 못 하셨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런 안내사항은 본질적으로 나에게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지원금 정산 방법 안내를 들으면서 설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가정통신문을 정독해 본 기억이 없는데, 안내문 같은 것을 읽을 때면 문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책상이 있는 방으로 옮겨 가서 앉았다. 조별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니, 의자에 앉아서 강연을 듣고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적절하지 않나? 아무튼 책상이 있는 곳에서 다 같이 조별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몸이 세 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조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을 수 없었다. 또, 자유로운 이야기 시간이었으므로 산발적인 대화의 흐름을 받아 적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각 조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으면서 드로잉을 했다.
- [1] 이 글을 업로드하기 전에 작별 인사와 함께 단체 카톡방을 나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