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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지혜 선생님께서 불참하셨으므로,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서지혜 선생님 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뒤, 주성진 선생님과 김월식 선생님의 조로 나눠져서 대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서지혜 선생님 조에 속하는 참여자들은 둘 중에 내키는 곳 아무 데나 가면 되었다)
서지혜 선생님 조에 주로 ‘교육’과 관련된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므로, 먼저 각자 궁금한 것이나 예술 및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니, 가지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화두를 제시해 주셨다. “도대체 나는 왜 문화 예술 교육을 하고 싶은가?” 단순해 보이지만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므로, 교육을 하려는 사람은 나름의 윤리적 기준도 있어야 하고, ‘왜 나는 문화 예술 교육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숙고도 있어야 한다고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1]. 그게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라는 것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월식 선생님께서 질문을 “나는 예술(혹은 기획)을 왜 하는가?”로 바꾸어주셨다. 그렇다고 해서 말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먼저 인영 님(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오늘 2시 반쯤에 일찍 가신)께 예술 교육과 관련된 일을 거부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인영 님께서는 스케줄이 허락하는 일은 웬만하면 하려고 하시지만, 시간이 되는데도 일을 거절한 적이 살면서 딱 한 번 있다고 하셨다. 담당자가 인간적으로 무례했기 때문이었다. 인영 님이 일을 수락하기 전에는 참여자 모집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거절할 일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작곡을 전공하신 진희 님께도 레슨을 거절하는 일이 있냐고 물어봐 주셨다. 진희 님은 (학원의) 원장님과 안 맞으면 일하기가 힘든 것 같다고 얘기해 주셨다. 진희 님께는 즐거움과 소통이 제일 중요한 가치인데[2], 그러한 교육 철학이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3]. 김월식 선생님께서도 나와 목적이 다른 곳에서 선생 노릇 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하셨다.
예술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예술 그 자체에 초점을 두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고, 창의성을 기르는 등 삶에 좋은 영향과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다. 그 사이에서 교육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병묵 님께서는 교육의 시장성과 연관 지어서도 얘기해 주셨는데, 도자 공방에서 일하시는 병묵 님은 자신이 만족시켜야 하는 대상이 학생(애기)인지, 아니면 고객(돈 낸 사람. 이를테면 애들 엄마)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공적인 지원 사업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좀 덜 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 영역의 예술이나 문화 기획이 그런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하더라도[4], 재단 및 공공기관이 원하는 방식과 기획자가 원하는 방식 사이에서 조율해야 하는 상황은 아주 빈번하게 있다고 한다.
소미 님께서는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서의 저울질이 소미 님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에서 제3의 정답을 찾으려는 소미 님의 노력은 교육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소미 님 자신의 삶과도 관련 있는 일이었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소미님께 ‘다양성’이 왜 그토록 중요한 가치인지 질문해 주셨는데, 소미 님께서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답답했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면 잘하기 어려운 법인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틀렸어”, “망했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고 한다. 소미 님께서는 이게 자신의 세대 또한 겪고 있는 문제이며, 스스로의 도전 또한 그런 문제적인 분위기에 의해 가로막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예술 교육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 주셨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은 “선수가 이미 많은데도 선수를 키운다는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꼭 선수의 길이 아니라 고유성의 길로 가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이것이 시민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하셨다. 자기 삶의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곧 시민의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또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끌고 가는 것의 시작점은 소미 님이 말씀해 주셨던 ‘다르다’와 ‘틀리다’ 사이의 저울질에 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다름과 틀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N 분의 1의 다양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고유성이 있는 삶이 고유성 있는 예술도 만들 수 있다. 예술가가 암만 용써봐도 이 세상만큼 독창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해 주시면서, 월식 선생님은 예전 기획 작업들을 우리에게 참고삼아 보여주셨다(폐지로 만든 불상 등).
이후에는 조를 나눠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1] 그런 고민이 없으면 ‘리박스쿨 늘봄학교’ 같은 별로인 기획이 나오는 거라고 다들 이야기했다.
- [2] 왜냐하면 진희 님께서는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봤었기 때문이다.
- [3] 두 분 다 참여자의 문제(어린아이의 경우 반항을 한다거나⋯⋯)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트러블이 더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 [4]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왜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