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늘은 특별히 김소미 님께서 운영하시는 공방 3911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소미 님의 텃밭에 가서 다 같이 비빔밥을 해 먹었다.
소미 님의 텃밭

텃밭에는 상추, 치커리, 깻잎, 쑥갓 등 여러 종류의 채소가 있었다. 적상추, 유럽 상추(?) 등등 상추만 해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심지어 고수도 재배하셨는데, 나는 고수 맛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월식 선생님께서 향과 맛이 남다르다고 하셨다. 샐러리도 이곳에서 자란 건 맛이 달랐다. 샐러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도 맛있게 잘 먹었다.

이런 날씨에는 채소들이 금방금방 자란다며, 소미 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닐봉투를 주시고 제발 채소들 좀 가져가시라고 했다. 마음껏 욕심내도 좋다면서. 옆에서 병묵 님이 이렇게까지 많이 뜯어도 되나 싶을 만큼 뜯어가시면 된다고 부추기셨다. 덕분에 잔뜩 담아왔다.

식사는 우리가 다 같이 뜯은 채소들과, 소미 님께서 준비해주신 무생채, 고추장, 참기름을 밥에다가 비벼 만든 산채비빔밥이었다. 혜림 님께서 계란프라이도 구워주셨는데, 실력이 예술이었다. 예전에 휴게소에서 계란프라이 굽는 아르바이트를 하셨다고 한다.

혹시 몰라서 월식 선생님과 여분의 즉석밥과 컵라면을 사 왔는데, 배불러서 컵라면은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서연 님께서 가져오신 과자가 들어갈 배는 따로 있었다[1]. 또, 서지혜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참외도 맛있게 먹었다. 진희 님께서는 요즘 남자들이 썸 타는 여자에게 멋있어 보이는 법이라면서, 썸녀가 무슨 과일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참. 외.”라고 대답하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상남자처럼 보이는 방법인 것이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딸기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진희 님 덕분에 그런 예쁜 과일을 좋아하면 상남자처럼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주성진 선생님[2] 께서 꽃을 따서 희언 님의 모자에 꽂아주셨는데 엄청 잘 어울렸다. 희언 님의 모자는 예쁘게 만들어주셨으면서, 정작 선생님 본인께서는 모자 대신 대야를 쓰셨다. 원래는 이 대야에 비빔밥을 해먹으려고 가져오신 것이다(그 정도로 큰 대야는 아니었지만). 밥을 많이 먹으려고 큰 대야를 가져오신 게 아니라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아마 주성진 선생님께서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오늘 점심에는 과식을 하셨을 것이다. 훌륭한 식사였으니까. 나는 이곳에 계속 머무르면 100킬로까지 찌우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거라고 느껴졌다. 병묵 님께서는 그냥 돼지가 아니라, 무려 건강한 돼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를 먹으니까. 여기서 비건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 그렇지만 살은 찌겠지. 비건이라고 해서 꼭 날씬해진다는 법은 없으니까. 코끼리도 채식을 하지 않는가? 소는? 소는 심지어 천천히 오래 먹는 편인데.



식사가 끝난 뒤, 소미 님의 공방을 잠시 구경했다. 예쁜 도자기들이 정말 많았다. 깨질까 봐 조심조심 돌아다니면서 보았다. 가마가 네 개나 있는 아주 큰 공방이었다. 인영 님의 조향 공간도 있었다[3]. 지난번에 인영 님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것 같다고 적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별 고민 없이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선생님이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인영 님의 명함도 선물 받았었는데 말이다. 사람 얼굴을 잘 못 외우다 보니 헷갈렸다. 나는 이제서야 참여자분들의 이름을 다 외웠다. 그럼 지난 시간까지는 못 외웠단 소리인가? 부끄럽지만 솔직히 약간 헷갈렸다. 지난 시간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세세히 들어봤기 때문에, 이제는 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 다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지난 시간에 불참하신 허진희 님과 공병윤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진희 님께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디밴드를 발굴하는 것이 취미라고 하셨다. ‘멜론’ 같은 음악차트를 인기 순이 아니라 최신 발매 순서로 보면서 괜찮은 신인 가수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비슷한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진희 님 주변에 꽤 많다고 했다(온라인에도 많이 보인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밴드를 발굴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은 자기만 알던 밴드가 유명해지면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라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진희 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에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제발 유명해져! 아니, 유명해지지 마! (나만 알고 싶으니까)”

진희 님께서는 인디밴드를 발굴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다 같이 무명 음악가를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열어봐도 괜찮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셨다. 또, NFT(난 이것에 대해 잘 모른다. 대충 그림 코인 같은 건가)를 결합해서 팬에게 음악의 지분을 주는 것도 고려해보셨다. 그렇게 하면 일찍 NFT를 구매했던 팬들이 ‘나는 예전부터 이 밴드 팬이었어’라는 것을 자연스레 인증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팬미팅 등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이처럼 무명 인디 밴드를 후원하는 시스템들이 갖춰진다면, 예술가를 발굴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건 국내 인디밴드 씬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진희 님께서 사업을 원하시는지, 아니면 문화적인 움직임(movement)을 일으키고 싶으신 것인지 여쭤보셨다. 진희 님은 아직 거기까지는 구체적으로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작게 보면, 놀이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고, 크게 보면 창업까지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러고는 칠판에 적힌 진희 님 이름 옆에다가 이렇게 적으셨다.
(나도 인디 방시혁 feat. NFT)


공병윤 님께서는 아직 구체적인 생각까지는 못 해보셨다고 한다. 대신에, 병윤 님께서는 말이 씨가 되는 학교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병윤 님 자신은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편인데, 다른 사람들이 ‘나는 몰랐던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도 그런 기획을 해보고 싶어졌다[4]고 말씀해주셨다.

병윤 님의 최근 관심사는 AI나 영화 쪽이었다. “같이 무언가를 한다”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두게 된 것이고, 굳이 따지자면 AI 쪽이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직은 AI로 뭘 하고 싶은지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고, 다만 “기능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장르라고 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병윤 님께, AI에 대해 ‘창작 도구’로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세상 시류에 관심을 갖는 차원에서 AI에 끌리게 되신 건지 여쭤보셨다. 병윤 님께서는 후자에서 시작해서 전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해주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예전에 병윤 님께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책임을 가지고 무언가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혹시 병윤 님께서 그러한 책임을 AI에 전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신지 여쭤보셨다. 병윤 님은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칠판에 모두의 기획을 간단히 요약하여 적어주셨다. 이제는 정말로 조를 배정해야 한다.
공병윤: 취향. AI. 기술.
김세아: 명함. (현수막)[5]
김소미: 친구
박희언: 완벽주의
우인영: 교무실 P. (시간)[6]
유혜림: 재미 without 힘. on[7]
이서연: 아이들 축제
이현진: 인디 공연장 전복[8]
이희주: 허그 x 그림
정병묵: 프리 유부남
허진희: 나도 인디 방시혁 feat. NFT


조를 나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기획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기획을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일대일로 조언을 받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조언을 듣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조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조를 나누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다 적을 수는 없다. 김소미 님(엄마들끼리 친구) - 이서연 님(아이들끼리 축제) - 정병묵 님(아빠들끼리 놀이). 이렇게 셋이 묶이면 가족을 해체시켜놓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지만 결국 세 분이서 한 조로 묶이지는 않았다) 이현진 님, 허진희 님, 공병윤 님 + 서지혜 선생님을 (음악, AI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 묶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잠깐 담배 피고 오시는 사이에 참여자분들끼리 알아서 조를 결성하는 바람에 이 묶음도 해체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조가 정해졌다. 서지혜 선생님 조는 쉬는 시간에 정해지게 되었다. (나도 간접흡연하러 갔다 오느라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는 잘 모른다) 김월식 선생님 조에는 상대적으로 “나에 대한”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주성진 선생님 조에는 좀 더 “판을 짜는(타인에 대한)” 사람들이 배정되었다.

서지혜 선생님: 우인영, 이서연, 김소미, 박희언
주성진 선생님: 이현진, 허진희, 공병윤, 이희주
김월식 선생님: 김세아, 유혜림, 정병묵


참고로 다음 주에는 서지혜 선생님께서 못 오신다. 그런 고로 서지혜 선생님과 한 조가 되신 분들은 엄마 없는 자식들처럼 다른 멘토 선생님들께 말씀을 동냥해야 한다(라고 주성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기획을 하려면 예산을 받기 위해 서류 작성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멘토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다음 시간에 최보라 님께서 특강을 해주신다고 한다. (이름하여 “보라보라, 정책을 보라 특강” - 주성진 선생님께서 작명하심) 또, 서지혜 선생님께서 경기예술교육지원센터의 자료실에 좋은 행정적 안내 자료들이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관심 있는 분들은 미리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다.



  1. [1] 서연 님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과자는 꼬북칩 캬라멜 팝콘 맛이라고 한다. 달기만 한 과자 혹은 아예 짠 과자(ex. 썬칩)를 좋아하신다고.
  2. [2] 나는 주성진 선생님, 서지혜 선생님은 풀네임으로 쓰지만 김월식 선생님은 간혹 월식 선생님이라고 쓴다. 평소에 ‘월식쌤’이라고 자주 불러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번 기획에서 처음 교류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혜쌤’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성진쌤’은 쓰면서도 약간 어색하다. ‘주’라는 성씨가 주는 인상이 강해서 그런가? 성을 붙여서 ‘주성쌤’이라고 하면 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주성진 선생님께서 이걸 보시면 어이 없으시겠지만) 이름에서 성이 주는 임팩트가 강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순신.
  3. [3] 오늘 인영 님께서 직접 만드신 향수를 맡아보고 마음에 들어서 충동구매했다. (가격도 싸다!)
  4. [4] 병윤 님의 표현으로는, 기획에 있어 ‘손님’이 되는 것 그 이상으로 참여하고 싶다
  5. [5] 월식 선생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셔서 괄호침
  6. [6] 괄호 친 이유는 인영 님께서 기획 두 개 까지는 버겁다고 말씀하셨기 때문
  7. [7] “힘 들이지 않고 재밌기”라는 뜻
  8. [8] 현진 님께서는 인디 밴드 ‘해서웨이(hathaw9y)’를 추천해주셨다. 안 까먹고 들어보려고 여기에 적어둔다.
닫기
© 2025 Sojeong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