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공지되었다시피 5월 29일에는 각자가 하고 싶은 기획에 대해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직접 그림까지 그려서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말라고 당부해주셨는데, 웬만하면 ppt도 준비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셨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와 맥락이 있다면 환영하시겠지만) 최대한 부담을 덜어주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참여자의 대다수가 이곳 경기도 광주에 거주하며, 10세 이하의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분들[1]이시다. 생업과 육아, 진로 고민 등등,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참여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참 감사하고 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참여자분들의 리마인드를 돕고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또, 지난 시간에 못 오신 분들께서도 앞으로의 프로그램 참여 방향에 대해 고민하시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세히 적어볼 것이다.


김세아 님


세아 님께서는 “진짜 하고 싶은” 기획과 “왠지 해야 될 것만 같은” 기획 두 가지를 나누어 설명해 주셨다. 세아 님의 “진짜 하고 싶은” 기획은 지난번에 얘기해주셨던 것처럼 ‘나를 표현하는 명함’을 다 같이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꼭 명함이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는데, 이를테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바둑돌을 하나 선물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인상적이긴 하겠다. 바둑돌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해야 될 것만 같은” 기획 역시 지난번에 얘기 나왔던 ‘선거 홍보 현수막 재활용하기’였다. 세아 님께서 찾아보신 바로는 그런 현수막들은 불이 엄청 잘 붙는 재질이어서, 천막 따위로 활용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선거 홍보물들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지 다 같이 생각해 보았다. 한복을 만들다 남은 자투리 옷감들을 엮어서 만드는 우리나라의 ‘조각보’ 전통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성남시에서 그런 홍보물들을 쓰레기 담는 마대 자루로 활용한다는 정보를 누군가 알려주기도 했다. 돗자리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아예 ‘깔고 앉고 싶은 후보’의 얼굴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버리는 행사를 열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궁금해졌다. 세아 님께는 왜 “진짜 하고 싶은” 기획과 “왠지 해야 될 것만 같은” 기획이 나누어져 있는 걸까? 아마 우리 모두가 궁금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세아 님 자신도.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일’과 ‘기획’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왜?”라는 물음이 내 안에 있을 때 기획이 비로소 흥미로워진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선생님께서는 기획이 꼭 프로파간다 같은 형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문화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생각해보니 멘토 선생님들께서 알려주신 수많은 예시들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들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데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날 집에 날아온 새 사진을 찍다가 아파트 야조회를 만들게 되신 분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당시 집에 누워계시던 아픈 어머님께서 새를(그 작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보고 즐거워하셨는데, 그것이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고, 나중에는 어머니께서 찍으신 새 사진들로 전시회도 여셨다고 한다.


우인영 님


우인영 님께서는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참고로, 인영 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 시간에 ‘진짜 하기 싫은 것’의 예시로 ‘설거지 미루기’를 꼽으신, 아주 대단한 분이시다) 인영 님의 “일하는 나”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것 같다. 일단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것은 확실한데, 아마 초등학교인 것 같다) 인영 님께서는 어느 날 복도를 쭉 돌아보시다가, 교실마다 있는 (주로 맨 뒤에 있는, 초록색인) 게시판에 붙어있는 종이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 그것들은 전부 ‘아이스크림 홈런(i-Scream Home Learn)’이라는 교육용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수업 활동 자료였다[2]. 인영 님에 의하면 학교 교실에서의 교육 활동들이 획일화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선생님의 주된 업무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 방식에 대해서 어른들끼리 회의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성실한 인영 님께서는 직접 포스터도 만들어오셨다. 이름하여, “교무실 탈출 기획 대작전”! (너무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끼리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기에 더없이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이름이다.) 인영 님도 세아 님처럼 사회적인(인영 님께는 “일”적인. 즉, “일하는 나” 차원의)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을 나누어 고민해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인영[3] 님께 왜, 계속, 뭔가를 하는지 여쭤보셨다. 인영 님께서는 “뭘 하지 않으면 불안”한데, 특히 애 앞에서는 5분도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고 대답해주셨다[4]. ‘시간이 아깝다’는 강박도 있으시다고 한다. 그래서 5분이라도 “시간을 뺏어올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을 “뺏어 온다”는 표현이, 인영 님께서 자신의 24시간을 꽉 움켜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게는 그 표현이 마치 모자란 시간을 나의 외부에게서 뺏어다 충당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인영 님께서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놔 두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말씀해주셨고, 그 배경에는 인영 님의 완벽주의가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여러 조언과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희주 님께서는 엄마들끼리 ‘줌(Zoom,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다 같이 5분 멍 때리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해주셨다. 누군가는 아예 우연적인 사건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애를 더 낳으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책임감이 나를 붕괴시켜, 완벽주의를 부수어 버릴 거라고 얘기해주셨다[5]. 또, 완벽주의를 해체시키기 위해서 ‘양자역학’처럼 아예 인과관계를 파고드는 학문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도 제안해주셨다[6].

나도 나름의 전공 지식을 살려서 몇 가지 도움 될 만한 이야기를 알려드렸다. 대부분의 명상은 ‘집중 – 비움 – 드러남’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무언가에 집중을 해야 그것이 아닌 다른 것들이 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비워졌을 때, 성스러움이 현현할 수 있게 된다[7]) 예를 들면 불교에서는 ‘화두’가 되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만 생각하게 하는 명상법(‘간화선’)이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없이 단숨에 생각을 비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을 비우려고 다짐하면 ‘생각을 비워야지’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문제는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그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집중하는 게 쉬웠으면 그게 종교 수행까지 됐겠는가? 그런데 김월식 선생님께서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월식 선생님께서 인영 님께 가방에 현금 천만 원을 넣고 시장 바닥을 돌아다녀보라고 조언해주셨는데, 그렇게 하면 정신은 온통 그 천만 원에 쏠릴 것이다. 아니면 팬티를 안 입고 돌아다녀보거나, 아니면 파트너 몰래 바람을 핀다거나⋯⋯. 여튼, 정신 팔릴 만한 일은 만들려면 한도 끝도 없이 만들 수도 있는 거였다. (종교적인 도움은 별로 안 되겠지만. 하기사, 또 모르는 일이다. 붓다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도약의 기회는 어쩌면 도처에 깔려 있다.)


유혜림 님


혜림 님께서는 발표를 위한 보조 자료를 준비해오셨다. 혜림 님은 “틀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틀을 깨부수는 게 아니라, 틀 안에서 은밀하게 나를 찾고 즐거워할 수 있는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일상의 틀을 나타내는 일정표를 짜보셨다. 혜림 님은 “일정인 나”와 “일정이 아닌 나”가 구분되어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궁금했다, 혜림 님께서는 “일정인 나”에 “일정이 아닌 나”를 끼워넣고 싶으신 것인지, 아니면 철저히 분리해놓고 싶으신지? 혜림 님께서는 분리하고 싶은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덧붙여, ‘애들 엄마’ 유혜림과 ‘직장인’ 유혜림을 분리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현재 다니시는 직장이 애들을 데려올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아이들을 일하는 곳에 들여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많은 ‘엄마’분들이 공감하셨다)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혜림 님께 1번 ‘엄마의 모드’, 2번 ‘직장인의 모드’ 외에 3번 모드를 새롭게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셨다. (가상의 모드여도 상관없다. 이상적인 3번 모드를 꼭 실현하진 않더라도 상상해볼 수는 있으니까.)

역시 ‘엄마’이신 희주 님께서는 엄마가 되면 하루에 결정해야 하는 일이 천 개 이상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많은 결정사항들이 엄마의 뇌를 매우 피곤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혜림 님께서 매우 공감하시며, 자신은 결정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셨다. 삶 자체가 마치 ‘입맛 없는 데 먹긴 먹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멘토 선생님들은 혜림 님의 기획이 ‘무력감’과도 관련있는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다) 혜림 님은 기분이 0부터 10까지 있다고 치면, 딱 4-5-6 정도만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피곤한 걸 정말 싫어하시는 것 같았다. 혜림 님은 이번 기획에서 “왜”를 정하기가 싫다고 하시면서 (그런 건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떻게” 할 것인 지만 고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 그런 태도는 기획이 목적성에 함몰되는 것을 막아서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얘기해주셨다.

나는 혜림 님이 나눠주신 종이를 다시 찬찬히 보았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딱딱한 계획표 속에 작은 자동차들이 끼워 넣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혜림 님의 취미[8]도 운전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혜림 님께서는 어쩌면 자신은 운전 기사가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 실제로도 학창 시절에 직업 적성 검사를 하면 추천 직업으로 운전 기사가 나왔다고 하셨다. 내 생각에 혜림 님은 운전하면서 무언가 하는 것이 잘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운전이라는 계획에 특별한 기획을 끼워넣는 것이다.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운전할 때만 변장하는 것이나, 자동차에 노래방 마이크를 설치하고 매번 노래를 부르면서 운전하는 것 등등 다양한 기획이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다.


이희주 님


희주 님께서는 미리 구상된 기획 아이디어를 가져오셨다. 길거리에서 진행하는 일종의 드로잉 퍼포먼스 같은 것인데,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림으로 나타내보았다. 이런 식으로 길에 벽을 설치하고, 희주 님이 지나가는 사람을 프리허그 하면, 프리허그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역시 길을 걷고 있던 행인들)이 안고 있는 두 사람을 그려준다. 희주 님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은 스킨십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터치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의 현대 사회에는 이런 기획이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프리허그 행사 같은 것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것들을 못 본지 좀 오래된 것 같다. 희주 님께서는 행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비교적 부담이 덜한 ‘낙서’라는 방식을 채택했다고 하셨다. (희주 님께서는 예전에 길거리 드로잉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으셨고, 사람들이 낙서라는 행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계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 이런 건 김월식 선생님께서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부류의 기획이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나였으면 쫄았을 거다. 하지만 희주 님께서는 곧바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월식 선생님께 질문하셨다. (첫날부터 포스가 남다르셨던 희주 님, 역시⋯⋯. 장군의 기개를 가지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우선 염려되는 점은, 기획의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또 기획이 1회성 행사로 소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해주셨다. 희주 님의 기획을 듣고서 내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은 낙서가 겹겹이 쌓인 알록달록한 벽의 모습이었는데, 멋진 모습일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은 나도 차마 의식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하면 희주 님의 기획을 (꼭 월식 선생님의 입맛에 맞춰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희주 님의 의도를 살리면서 좀 더 형식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꺼내보았다. 저는 희주 님의 기획이 좋은데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껴안는 것보다 아빠를 껴안는 게 사실 더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직접 주변 사람을 안아본다면, 나 자신의 변화는 내가 예측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주 님의 표정을 보니 희주 님께서도 모르는 사람 껴안는 것보다 아는 사람 껴안기가 더 어렵다는 것에 동감하시는 것 같았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기획에서 시키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분리되는 것 또한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정병묵 님


핍박받고 계신 병묵 님. 우스갯소리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 ‘프로그램 내 괴롭힘’에 시달리고 계시는 병묵 님께서는 오늘도 많은 공격들(특히 엄마들의 질문 공세)에 의해 수세에 몰리셨다. 하지만 매번 굴하시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병묵 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말이 씨가 되는 학교에서 ‘아버지들의 수호자’를 맡고 계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버지가 아니시다)

병묵 님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유부남 혹은 유부녀인데, 병묵 님께서 관찰하시기론 아내들은 남편이 어디를 가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존재였다. 남편이 어디 나가기라도 하면, 아내들은 묻는다. 거길 왜 가는데!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로) 불쌍한 남자들은 화장실로, 이른바 ‘화캉스’를 떠난다. 간신히 아내로부터 허락이 떨어지는 날이면, 그날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불사지르려고 한다. 병묵 님께서는 본인이 미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9].

누구에게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창구는 존재해야 할 것이고, 그건 3040 남성에게만 특별히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끄덕이고 있었는데, 엄마들은 다들 병묵 님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앞서, 병묵님께서는 “거길 왜 가는데!”라고 쏘아붙이는 아내들을 위해, 아빠들이 놀고 있는 곳에다가 (마치 키즈클럽처럼) CCTV를 설치하여 당신의 남편들이 헛짓거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본인 기획인데 자꾸 엄마들에게 ‘제안’하고 눈치를 보신다는 점이 조금 웃기다) 덧붙여, 남편이 어디서 뭘 하는지가 왜 그렇게 궁금한지 자신을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엄마’ 김소미 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육아는 공동의 일인데, 애를 두고 자기 혼자서 놀러나가는 것 자체가 아내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들 수 밖에 없는 것이지, 남편이 헛짓거리를 할까봐 의심하는 게 포인트가 아니다. (물론 남편에 대한 신뢰가 바닥나게 된 특수한 경우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남편에게 “거길 왜 가”라고 묻는다고 해서, 아내들이 정말로 남편이 뭐 하는지에 대해 순전한 호기심을 가진 것은 아닌 것이다. 소미 님께서는 남편이 애 놔두고 지 혼자 나가는 것은 “게임에 접속했는데 유저 한 명이 안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이 엄청나게 답답한 일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나조차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엄청난 비유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절로 감탄이 나온다.

또한 ‘엄마’들은 왜 남자들은 노는데 꼭 술을 마셔야만 하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병묵 님께서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커피나 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건 진짜 이상한 거라고 항변하시며, 술은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고, 더군다나 양주를 마시게 되면 (아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도 못할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만큼 공격 받으면 꺾일 만도 한데, 병묵 님께서는 꿋꿋이 ‘엄마’들로부터 기획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려고 노력하셨다. (왜냐하면, 엄마들이 허락을 안 해주면 아빠들은 병묵님의 기획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기획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셨고 병묵 님께서는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병묵 님의 기획은 남편뿐만 아니라 그의 파트너와 자녀들까지 아우르는 기획이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세상에, 병묵 님은 이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 건투를 빕니다.


이서연 님


서연 님께서는 아직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축제를 기획하고 싶은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자고로 축제란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쉴거리 이 네 가지가 필요하다면서, 이것들을 먼저 셋팅해놓고 기획을 확장시켜나가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서연 님께서는 왜 하필 축제를 기획하고 싶으신지 여쭤보셨다. 서연 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매일을 축제처럼 살 수는 없으니까요”. 월식 선생님께서는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이 꼭 많을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가져가게 될 몫은 n분의 1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서연 님께서는 소수의 사람들끼리 큰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의 작은 경험도 소중한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서연 님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많이 혼란스러워하셨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축제라는 게 사람이 많아야 제 맛이긴 하다고 덧붙여주셨다.)

서연 님께서는 여러 가지를 다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그런 서연 님을 응원해주셨다. “하면 되지 그럼!”. 지금까지 확실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기획을 하고 싶다는 욕구, 그것이 서연 님의 원동력이었다. 서연 님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문화적인 체험의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넘치는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하셨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이들을 위한 기획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나중에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더 이야기해보신다면 서연 님께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진 님


현진 님께서는 관객석과 무대의 단차를 줄이는 등, 무대의 권력을 실험하는 기획을 여러 방면으로 구상 중이셨다. 서지혜 선생님께서 그런 기획을 왜 하고 싶은지 여쭤보셨는데, 현진 님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공연자를 우상화하는 분위기가 불편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것이 (마치 콜로세움 같은) 공연장의 구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관객과 무대를 전환시키기 위한 여러 구조적인 대안들도 고민하고 계셨다.

현진 님께서는 “다 같이, 하루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공연 전에 관람자들이 대기하는 시간에도 기획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껴져서, 아예 픽업에서부터 기획이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계셨다. 현진 님께서는 “노는 것은 엉망진창일 때가 재밌”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하지만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놀 수 있는 곳들, 이를테면 어렸을 때 갔던 감자탕집 놀이터나 방방 같은 곳들은 대부분 어린이들에게만 열려있다. 요컨대, 성인들을 위한 놀이터가 부재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것이 현진 님의 문제의식이었다. 현진 님은 공연이 지나치게 주가 되지 않는, 모두 다 같이 놀 수 있는 기획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김소미 님


소미 님께서는 기획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만드신 마인드맵을 모두에게 공유해주셨다. 소미 님의 기획 욕구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10]. 소미 님도 다른 많은 참여자분들처럼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는데, 바로 이것 때문에 소미 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애를 키우면서 소미 님은 자연스레 다른 학부모들과 같이 교류하게 되었고, 그중에서는 소미 님과 유독 친밀하게 잘 지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들 친구가 에들 엄마 친구가 되다 보니, 애들끼리 서먹해지면 엄마들끼리도 다시 보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녀를 매개로 친구가 되다 보니, ‘진짜 내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소미 님은 말씀하셨다. 서로 친한 데도 연결이 잘 안 되는 관계들에 대한 아쉬움은 소미 님처럼 엄마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일 것이다. 소미 님은 지난번에 말해주셨던 것처럼 “말없이도 편안한” 친구 관계를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시간적 여유는 내기 어려운 법이다. 편안한 친구 관계를 만드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았고, “내 친구”에 대한 소미 님의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

서지혜 선생님께서는 소미 님의 ‘친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질문하시면서, 소미 님의 고민에서 아예 ‘친구’라는 단어를 빼고 생각해봐도 괜찮겠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주성진 선생님께서는 소미 님의 고민이 마치 사춘기 소녀가 완벽한 사랑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하시며, 꼭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간단명료한 답변을 내놓으셨다. “술을 먹어야 돼 ㅋㅋ”.


박희언 님


이 프로그램에서 ‘엄마’ 다음으로 많은 것은 ‘완벽주의자’인 것 같다. 다들 완벽주의에 고통 받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대표적으로 희언 님이 있다. 희언 님은 “완벽하지 않은 발표를 견디는 것이 오늘의 숙제”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하셨다. 희언 님께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완벽주의가 된 것 같다고 설명해주셨다. 더불어, 완벽하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회피하는 성향이 2030세대에서 짙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희언 님께서는 두 가지 기획 아이디어를 제시하셨다. 첫 번째는 ‘실패 연습 챌린지’. (이건 희언 님께서 개인적으로 다른 모임에서 실천하고 있는 중이시다) 실패를 연습한다는 의미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나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완벽하지 않은 나를 견디기 프로젝트’이다. 내가 도저히 못 하겠는 일을 해보는 것으로, 지난 시간에 인영 님께서 제안해 주셨던 것과 비슷한 아이디어다. (인영 님께서는 자신이 왜 완벽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기획을 보자마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고 말씀하셨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걸그룹 댄스를 카피해보는게 어떻겠느냐면서, 그렇게 하면 완벽하지 않은 나를 직빵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 같은 조언을 해주셨다.



  1. [1] 그래서 유이(惟二)한 남성 참여자 중 한 분인 정병묵 님은 늘 외롭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남성 참여자인 공병윤 님께서 사정상(주로 일 때문에) 불참하신 적이 많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정병묵 님께서는 3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놀이 기획을 이 프로그램 초반부터 쭉 밀어오셨는데, 아빠들을 조금이나마 해방시키고자 하는 정병묵 님의 소망은 줄곧 많은 ‘엄마’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2. [2] 다들 생소해하는 분위기였지만,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나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아이스크림 홈런’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수업 도구였으니까. 모든 활동 자료들, 심지어 시험 문제까지도 그곳에서 나왔다. (물론 중간, 기말고사처럼 큰 시험은 선생님께서 직접 출제하시겠지만 최소한 ‘단원평가’는 모두 그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이었다) 아이스크림 홈런, 그 이름 참 오래간만에 들어본다. 아직도 건재하구나⋯⋯.
  3. [3] 키보드 자판에 ㄴ과 ㅇ이 붙어있어, 자꾸 “인연 님”이라고 오타를 낸다. (생각해 보니 발음도 비슷하다) 이것이 인영 님의 직업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한 번 적어보았다.
  4. [4] 인연 인영 님께서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시다.
  5. [5] 나는 자식은 없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붕괴됐던 적이 있다. 완벽주의를 해체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공황장애를 얻었었기 때문이다.
  6. [6] 나는 철학의 한 분과인 ‘기호논리학’을 공부했을 때 그러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게 논리적이고, 타당하잖아”라는 내 직관이 철저히 공격받는 경험이었다. 예컨대, 논증에서 전제가 모순이면 결론이 뭐가 됐든 타당한 논증이 된다. 즉, ‘윤석열은 여성이면서 여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배트맨이다’ 이건 타당한 논증이다.
  7. [7] 라고 종교에서는 이야기한다. 믿거나 말거나.
  8. [8] 6666, 8888 처럼 같은 번호 네 자리로 구성된 자동차 번호판을 사진 찍어서 수집하는 것
  9. [9] 병묵 님께서는 사람들이 병묵 님의 기획 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참고 자료를 준비해주셨다. (https://youtu.be/jDZY18YlOoA?si=4subr0-r_6BS-jkz, 영상 전체가 아니라 인트로 부분만 보면 된다)
  10. [10] 참고로 소미 님은 매우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이시다. 소미 님은 결코 왕따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소미 님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05.29 기획학교 후기 (김소미 님)

닫기
© 2025 Sojeong Lee